[천자 칼럼] 한국인의 세공기술

입력 2022-06-17 17:30   수정 2022-06-18 00:11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에 있는 국보 ‘정문경(精文鏡)’은 우리나라 초기 철기시대를 대표하는 청동 유물이다. 기원전 4~3세기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정문경은 고조선 시대 유물이라는 점 외에 그 정교함에 가치가 있다. 지름 21.2㎝의 거울 뒷면을 대중소 3개 동심원 구역으로 나누고 거기에 1만3000여 개의 선과 100여 개의 동심원, 삼각형 등 기하학적 문양을 새겼다. 선의 높이는 0.007㎜, 폭은 0.05㎜, 선들 사이의 간격은 0.3㎜에 불과하다. 1㎜ 안에 머리카락 굵기(0.08㎜)보다 가는 선 3개를 그려 넣은 셈이라 확대경을 동원해야 제대로 보일 정도로 정교하고 세밀하다. 고도로 숙련된 제도사가 확대경과 초정밀 기구를 동원해도 그리기가 쉽지 않은 작업인데, 맨눈에 초보적 기구로만 이토록 정교한 문양을 어떻게 그렸을까.

더욱 놀라운 것은 정문경이 주물 제품이라는 점이다. 금속판에 선을 그은 것이 아니라 틀(거푸집)에 쇳물을 부어 정밀하게 문양을 찍어냈다. 정교한 틀을 만들기도 어렵거니와 쇳물로 초정밀 문양을 떠내는 것은 더 어렵다. 현대의 전문가들이 밀랍주조법, 주물사주조법 등 다양한 방법으로 복원을 시도했으나 온전히 성공하지는 못했다. 발견 당시 제기됐던 현대 위조설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오죽하면 “이건 사람의 솜씨가 아니다”고 했을까. 고조선 당시 청동거울은 제사장의 권위를 상징하는 신물(神物)의 하나였다는데, 정말 하늘이 도와주기라도 한 걸까.

한국 공예미술사에 또 하나의 불가사의가 추가됐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그제 공개한 8세기 통일신라 금박 유물 ‘선각단화쌍조문금박(線刻團華雙鳥文金箔)’이다. 가로 3.6㎝, 세로 1.17㎝, 두께 0.04㎜의 금박에 굵기 0.05㎜ 이하의 선으로 한 쌍의 새와 꽃을 정밀하고 생생하게 새겼다. 돋보기나 현미경이 없으면 알아보기도 어렵다. “세계적으로도 고대 유물 중 이렇게 정교한 사례는 없을 것” “불가사의할 정도의 작업”이라는 평가가 나온 이유다.

고금을 통틀어 한국의 세공기술은 세계 최고의 정교함을 자랑한다. 신라 금관과 금제 허리띠 장식, 백제의 금동대향로가 대표적이다. 은을 가는 실로 만들어 금속 그릇에 문양을 넣는 은입사 기법은 또 어떤가. 그런 극강의 세공기술이 면면히 이어져 지금도 한국이 귀금속(주얼리) 정밀가공의 세계적 선도국이 된 것 아닐까.

서화동 논설위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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